의정갈등 속에서도 '악전고투'하는 의료현장 속 사람들

마비직전 대학병원 응급실 지키는 의사들
환자 몰려드는 중소종합병원 응급실
꺼져가는 생명 돌보는 중환자실
구연주 기자 2024-08-29 16:32:43
의대 증원을 계기로 시작된 의·정 갈등이 반년이 넘도록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27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내원한 시민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매일신문제공


지난 2월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발표하고 전국 의대 정원을 3천58명에서 2천명 더 늘린 5천58명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을 때가 설날 1주일 전이었다.

설날 이후 전공의들은 정책에 반발해 사표를 던졌고 이 때부터 대한민국 의료는 격량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설날 직후 시작된 의정갈등은 6개월이 지나 추석이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 동안 많은 의료현장은 결국 '남은 사람'이 지키고 버티는 가운데 유지되고 있다.

분초를 다투는 응급실 현장 사람들은 '번아웃'이 일상이 됐지만 그래도 '생명을 살리는 의료인'이라는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다.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오는 1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간다. 다만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실, 투석실 등 필수 분야 진료는 지속한다. 연합뉴스


◆ '마비 직전'의 대학병원 응급실

김정호 영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현재 응급실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교수를 비롯한 전문의 1명, 전공의 1, 2명, 인턴 3, 4명 등 의료공백 이전에 5~7명이 응급환자를 돌보던 영남대병원 응급실은 교수 1명이 전담하고 있다. 교수 1명이 구급차로 이송되거나 직접 찾아오는 응급환자의 상태를 살펴야 하고 수술이나 치료가 가능한지 다른 진료과에 연락해야 하고 병원을 옮기기 위해 다른 병원에 전화를 걸어야 한다. 그야말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상황이다.

의료공백이 시작된 이후 대구 시내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는 각 응급실마다 1명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큰 권역응급의료센터라 할지라도 전공의들이 없는 상태에서 일손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힘에 벅차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환자를 수용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건으로 하루에 100통 이상 다른 병원이나 구급대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된다"며 "가끔 '내가 전화교환원인가' 헷갈릴 때도 있지만 응급실에 온 환자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라도 정신줄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 몰려드는 환자에 발 동동 구르는 중소종합병원 응급실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이 제 기능을 못하면서 중소규모의 종합병원 응급실 또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대구경북 환자들만 수용해도 벅찬 마당에 의료공백 이후부터는 충청, 강원지역에서까지 치료가 가능한지 연락이 온다.

김광수 구병원 응급실 진료과장은 "얼마 전 응급실에 온 환자 중에 강원도에서 온 맹장염 환자도 있었다"며 "이 환자 또한 강원도 전역에 맹장염 수술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어 가능한 병원을 찾다찾다 대구까지 온 경우"라고 말했다.

종합병원 응급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 또한 '보낼 병원이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환자의 호흡이나 맥박 등 '활력 징후'가 급격히 떨어져 상급종합병원의 수용이 필요할 때는 더욱 난감해진다. 만약 대구 시내 5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이 모두 '수용불가' 메시지를 보내면 환자 생명이 위험해진다.

이재렬 W병원 응급실 원장은 "대구 시내가 안 되면 전국단위로, 심지어는 사적인 인연까지 모두 활용해 연락해 환자 옮길 곳을 찾는다"며 "그 시간 동안 환자는 힘들어하고 응급실 의사들 속은 타들어간다"고 말했다.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5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중환자실 인근에서 한 의료 관계자가 내원객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꺼져가는 생명 돌보는 중환자실

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사태가 심해져도 지역 각 대학병원의 중환자실을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영남대병원의 경우 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신생아, 호흡기내과 등의 중환자실이 운영되고 있다. 한 진료과마다 많게는 20명의 중환자가 입원해 있다.

한 분야마다 많게는 20명의 중환자가 입원해 있다. 중환자실은 전공의가 빠진 자리에 간호사들이 업무공백을 메우고 있다. 또 전임의(펠로우) 등으로 구성된 신속대응팀이 돌발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중환자실은 환자 2~3명에 간호사가 3교대로 돌보고 있다. 전공의들이 빠지면서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간호사들이 대처해야 할 상황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특히 교수들도 외래, 수술, 당직 등 한계에 다다른 업무가 6개월째 이어지면서 번아웃 직전이다. 의사건, 간호사건 다들 극도로 예민해 진 상태다.

그래도 환자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중환자실은 단 일분일초라도 멈출수 없다는 사명감으로 의료진들은 힘들지만 똘똘 뭉치고 있다.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 관계자는 "아무리 의료공백 사태가 있더라도 중환자실 의료진들은 절대 자리를 지켜야 한다"며 "중환자들에게는 일분일초에 생명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중환자실 의료진들은 24시간 풀가동되고 있다"고 전했다.

진료지원(PA) 간호사의 의료 행위를 법으로 보호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28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빈자리 지키는 병동 간호사들

전공의가 수련병원을 이탈한 이후 간호사들이 업무를 떠맡고 있다.

지난 2월 이후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전공의 대신 일반간호사를 추가로 전담(PA)간호사로 활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경영난을 이유로 신규간호사 채용에 나서지 않으면서 적정 인력충원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는 입원환자가 줄어들어 간호사들의 업무가 줄어든 것 아니냐고 하지만 전공의들의 공백을 채우는데 더 많은 일손이 들어간다. 병원에서 경영을 이유로 무급휴가, 유급휴가 등을 이유로 인력을 축소하고 있어 업무량은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특히 전담간호사의 경우 환자들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업무를 모두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일에 대한 스트레스강도가 높다.

묵묵히 일해오던 간호사들이 더 이상은 못참겠다면 오는 29일부터 총파업을 선언하면서 의료대란이 본격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지난 6개월 동안 간호사들은 묵묵히 의정갈등과 관계없이 자리를 지켜왔다.

모 대학병원 한 간호사는 "의료공백 사태 때문에 전공의들의 공백을 채우느라 간호사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그래도 수술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환자들을 볼 때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말했다.

◆의료기사, 행정직원 묵묵한 뒷바라지

대학병원은 외래진료, 입원, 수술 축소로 인해 환자들이 물리적으로 줄어들어 방사선사 등 의료기사나 행정직원들의 일손을 줄어들었다. 반면 대학병원에서 발길을 돌린 환자들이 몰리면서 중소병원들의 의료기사, 행정직원들의 일이 크게 늘었다.

특히 평소보다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환자대기 시간 등이 길어져 불편을 해소해줘야 하는 행정직원들은 진땀을 흘리고 있다.

남구 B종합병원의 경우 평소 병상가동률이 80~90%였지만 지금은 100% 풀가동된다. 응급실조차도 입원할수 있는 병상이 없다. 행정직원들이 일하는 공간을 쪼개 병상을 더 만드는 공사까지 진행되고 있다.

B종합병원 총무부장은 "대학병원이 전공의가 빠지면서 그 의료시스템을 중소 종합병원이 지지해주고 있는 형국이다. 이같은 상황 때문에 중소병원들의 행정직원 일도 크게 늘었다. 행정직원들도 지금의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열심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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