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꿈을 꾸니 꿈같은 일이 생겼다

[책] 스시로 별을 품다
문경환 지음 / 봄빛서원 펴냄
한지우 기자 2025-04-16 11:25:11
▲ [책] 스시로 별을 품다


1990년대라면 재력가들의 식사자리에서나 들어봄직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고급 일식집의 마스터 셰프가 테이블 앞에서 재료와 조리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며 신뢰와 존경을 담은 미소로 마무리하는 장면 말이다. 오마카세 열풍에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의 내로라는 스시 셰프 이름 한 둘쯤은 꿰는 게 이상하지 않은 시절도 있었다지만, 여전히 오마카세는 고급스런 비싼 음식이고, 객장을 지배하는 셰프는 예술가처럼 느껴진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외식 한 번 해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형편이 안 좋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있었다. 중학교 3학년에 우연히 만난 '미스터 초밥왕'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았고 평생 꿈을 위해 달리더니, 한국인 최초로 도쿄 미쉐린 1스타 셰프, 5년 연속 미쉐린을 이어가는 인물이 됐다. 도쿄 아자부주반에 위치한 '스시야 쇼타'의 문경환 셰프이다.

'스시로 별을 품다'는 문경환이 살아온 스시 인생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스스로 점검하는 중간평가이다. 책은 자수성가형 인물의 삶이 그렇듯이 예상된 수순을 충실하게 밟는다. 꿈의 대상을 만나고 꿈을 키우고 현실로 이루기 위해 갖은 고난을 겪고 좌절했다가 극복하여 오늘에 이른다는 식으로, 거칠게 말해 할리우드 영웅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이 절대반지를 얻는 일이나 지구를 구하는 히어로가 되는 세부방식에서 차이를 보일 뿐.그럼에도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혼신을 다하는 사람을 책으로 만난 건 오랜만이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내가 뭐라고 글을 쓸까" 싶었겠지만 남이 정한 잣대에 순응하며 살지 않았기에 오늘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책 어디에도 미쉐린 스타 셰프가 되는 비결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 문경환은 마음가짐 즉 태도가 모든 걸 좌우한다고 말한다. 설거지는 허드렛일이 아니고 접객의 핵심 중 하나라거나, 빗자루 잡는 마음이 생선 잡는 마음이 된다거나, 깨끗하고 잘 접힌 물수건으로 손님에게 감동을 준다는 정도가 전부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얘기다.

100만 원을 들고 도쿄로 가서 신주쿠 이자카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으나 모든 상황이 녹록치 않았을 때조차(수중에 30만 원이 전부였으나) 고급 오마카세로 대미를 장식해버린 호기. 손님과의 원활한 대화를 위해 월급 대부분을 지불하며 일본어 1:1 과외를 받는 전심전력의 자세가 문경환의 오늘을 만든 동력일 터. 그의 성실함과 끈기는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테라사와 다이스케를 그의 가게에 단골손님으로 만들어버린다. "꿈을 꾸니 꿈같은 일이 생겼다."는 말을 이보다 더 감동적으로 재현할 수 있을까.

▲ 영화평론가 백정우

저자는 21세기에 만난 1970년대 인간형 혹은 TV 휴먼다큐멘터리 '인간극장'의 복각에 가까워 보인다. 일본에서 수련한 요리사답게 장인정신과 투철한 직업의식이 몸에 밴, 거칠게 말하자면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인물이지만, 그 우직한 고집이 오늘의 문경환을 만들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추신) 오마카세 셰프의 이야기란 카운터에 앉아 그가 쥐어주는 스시를 음미하면서 들어야 제 맛인즉. 온통 먹는 이야기로 가득한 책을 읽는 건, 식당 문 앞에서 석쇠불고기 냄새와 연기를 맡는 괴로움과 다를 바 없다. 스시간장이라도 별책부록으로 주면 좋았으련만.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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