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 '노조 리스크' 우려…삼성전자 '노노 갈등' 가능성도

월스트리트저널 "전삼노 총파업 등 '무노조' 경영 균열"
삼성전자 제3 노조 동행노조, 전삼노 작심 비판
구연주 기자 2024-07-29 11:33:54
22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세미콘 스포렉스에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총파업 승리 궐기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노조 갈등이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삼성전자 일부 노동조합은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전삼노)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반도체 동맹 새로운 위기 직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현지시간) 세계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고 있으나 삼성전자 노조가 파업을 벌이는 등 노동자들의 반발이 업계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동맹' 주요국들은 반도체 제조를 전략적 산업으로 평가해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반도체 산업 투자 규모는 세계적으로 수천억 달러에 이른다. 10년이 지나면 업계 연간 매출은 1조 달러로 지금의 두 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 근로자들은 처우 개선 요구를 강하게 하고 있다. WSJ는 삼성전자 사내 최대 규모 노조인 전삼노가 지난 8일부터 돌입한 무기한 파업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삼성전자는 이번 파업이 한국의 반도체 제조 공장 3곳의 생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앞으로도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3일 삼성 노사는 파업이 시작된 이후 첫 번째 회담을 가졌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사측 대변인은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파업에 참여 중인 한 노조원은 일반적으로 8시간 교대 근무를 하는 경우 여러 가지 유지보수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는 높은 수준의 공장자동화가 돼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유지보수 엔지니어가 근무하지 않으면 반도체 제조 공정의 단계마다 수십 가지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한국, 대만을 비롯한 전 세계 대부분의 반도체 업체는 최근 수십 년 동안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2019년 설립된 삼성 노조는 반도체와 스마트폰, 가전 등 다양한 사업 부문에서 한국 내 근로자 약 12만5천명의 약 4분의 1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지난 2020년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의 과거 노조 파괴 관행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삼성 노조는 이번 파업 참가 인원을 정확히 공개하지 않았지만, 7월 8일 파업 시작 집회에는 약 6천500명의 조합원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미국통신노동자조합(CWA)은 인텔을 포함한 미국 반도체 대기업에서 노조를 조직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노조의 칼 케네브루 통신지부장은 한국에서의 파업을 지적하며 미국 기업들은 노사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미 연방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사문제는 미국 자동차 업계와 UPS, 할리우드 작가와 배우들 사이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코넬대학교 노사관계대학원 집계에 따르면 2023년 미국에서는 약 54만 명의 근로자 약 470건의 파업에 참여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8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앞에서 열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노노갈등 재점화되나

전삼노 파업이 장기화되자 사내 제3노조인 '삼성전자노조 동행'(이하 동행노조)이 전삼노를 비판하고 나섰다. 동행노조가 파업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힘에 따라 전삼노가 오는 8월 초까지 사측과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 '대표교섭 노조' 지위를 상실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동행노조는 이날 사내 직원들에게 이메일 등을 통해 "기대했던 대표 노동조합의 총파업을 통한 협상이 회사와의 첨예한 대립으로 더 이상 합리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강성 노조의 힘은 앞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실망만 안겨줄 것"이라며 전삼노를 비판했다.

또한 "소통의 문을 닫아버린 회사와 서로의 이익만을 위하는 노동조합"이라며 "직원들만 서로 갈라지고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삼노는 지난해 8월 대표교섭권을 확보해 오는 8월 4일까지 대표교섭 노조 지위를 보장받는다. 이후 1개 노조라도 사측에 교섭을 요구하면 개별 교섭이 진행되거나 다시 교섭 창구 단일화를 진행해야 한다.

현재 삼성전자에는 전삼노, 동행노조를 비롯해 사무직노조, 구미네트워크노조, 삼성 5개 계열사 노조를 아우르는 삼성그룹 초기업노조의 삼성전자지부(옛 DX지부) 등 총 5개 노조가 있다.

동행노조가 전삼노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내달 5일 이후 전삼노가 대표교섭 지위를 상실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전삼노의 파업도 자연스럽게 종료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노노 갈등은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삼노의 지난달 29일 파업 선언을 전후해 초기업노조 DX지부는 과거 전삼노의 비위를 주장한 바 있다.

전삼노는 앞서 지난 23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8월 5일 변경사항이 생길 가능성이 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그 기간 안에 (교섭을) 끝내려고 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사측과 전삼노는 오는 29일부터 사흘에 걸쳐 '끝장 교섭'을 진행할 계획이다. 대표교섭권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전삼노는 이번 협상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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