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2시쯤 찾은 대구 북구 팔달신시장. 시장 중앙 골목에서 모퉁이를 돌면 나오는 한 허름한 상점은 채소 등을 팔아 지난 2022년 기준 115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현장을 조사해 보니 장사한 흔적은 없었다. 가게엔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냉장고 두 대와 비닐이 담긴 바구니 등이 전부였고, 그 뒤편엔 각종 잡동사니가 쌓여있는 작은 창고였기 때문이다.
인근에서 장사하는 몇몇 상인들도 해당 상점이 장사하는 걸 본 적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처 가게에서 장사 준비를 하던 한 상인은 "저기 장사 안 한다. 그만둔 지 오래됐다"고 말했고, 또 다른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 역시 "누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긴 한데, 점포 운영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온누리상품권 부정유통이 전국적인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대구에서 일부 점포를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6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에 따르면 이 상점을 운영하는 A법인은 부정유통 의혹으로 민원이 접수돼 조사를 받고 있다. A법인은 북구 매천동 매천시장(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채소 도매업을 운영 중이다. 이 때문에 실제 거래는 매천시장에서 하고 팔달신시장엔 이른바 '가짜 점포'를 계약해 온누리상품권을 부정유통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통시장인 팔달시장에선 온누리상품권 유통이 가능하지만 도매시장인 매천시장에선 불가능하다.
A법인의 부정유통 의혹이 불거진 건 최근이다. 지난달 18일 A법인은 대구 북구청에 '온누리상품권 환전한도 상향신청서'를 접수했다. 구청은 A법인의 주소지가 전통시장인 팔달시장 구역 안에 등록돼 있고, 장사에 사용하는 냉장고가 작동 중이었다는 점 등을 인정해 상향신청서에 확인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일부 상인들은 A법인이 실제로 팔달신시장 내에서 영업하지 않고 있다며 소진공에 민원을 제기했다.
전통시장 온누리상품권 발행지원 세부시행 세칙에 따르면 상품권의 기본 월 환전한도는 800만원이지만, 가맹점의 상품권 수령액이 이 한도를 초과할 경우 상인회장 또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의 확인을 받아 신청자의 월 평균 매출금액 내에서 한도상향을 신청할 수 있다. 이에 따라 A법인은 매달 약 9억5천만원의 환전이 가능해졌다.
이번 의혹의 핵심은 창고처럼 사용하는 팔달신시장 내 점포를 도매업 특성상 영업활동이라고 볼 것인지, 아니면 실제 상품권 거래는 매천시장에서 하고 주소지만 전통시장으로 등록해 놓은 부정유통으로 볼 것인지에 달렸다.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과태료 부과나 가맹점 취소 등의 처분을 당할 수 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A법인은 대표는 "생물(상품)을 밖에서 가져와 매천시장에서 경매를 보고, 팔달신시장 내 점포도 유통에 이용하고 있다"며 "관련법상 부정유통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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