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인과 클래식 성악가들이 도메니코 모두뇨의 이탈리아 칸초네 '볼라레'(Volare, 날아올라)를 합창하자 2천여명의 관객이 일제히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친다. 엄숙하기만 했던 공연장이 순식간에 인기가수의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2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국립합창단의 '2024 여름합창축제'는 "사람의 목소리가 최고의 악기"라는 명언을 실감할 수 있는 무대였다.
이번 공연에는 국립합창단 위촉 작곡가 우효원이 국악과 클래식, 재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편곡한 총 18곡이 무대에 올랐다.
합창단과 함께 노래를 부를 솔리스트로 소프라노 박혜상, 테너 손지훈, 소리꾼 김수인, 바리톤 이승민이 참여했다. 또 첼리스트 홍진호와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 하모니카 연주자 박종성이 협연자로 나섰다.
가장 인상적인 무대는 박혜상과 국립합창단이 부른 '달빛'이었다.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라노가 된 박혜상의 노래도 대단했지만,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던 오장환의 무대 연출이 돋보였다.
합창단의 노래가 시작됐는데도 박혜상이 무대에 나타나지 않자 객석이 술렁거렸다.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를 즈음 갑자기 무대 뒤편 2층 객석 문이 열리더니 박혜상이 나타났다.
천천히 객석 중앙으로 이동한 박혜상 뒤로 '여름밤 달빛 아래 풍경'을 형상화한 영상이 비쳤다. 달빛 아래서 울려 퍼지는 박혜상의 노랫소리에 관객들은 넋을 잃고 감상했다. 그야말로 한 편의 잘 만든 오페라를 보는 듯한 무대 연출이었다.
지난해 차이콥스키 국제음악콩쿠르 우승자인 테너 손지훈의 노래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청춘의 눈부심을 태양의 강렬함으로 표현한 '눈부신 태양의 빛'은 손지훈을 위해 작곡된 노래라고 착각할 정도로 뛰어난 무대를 선보였다. 공연장을 가득 채운 손지훈의 풍부한 성량이 가슴을 뛰게 하는 공연이었다.
가야금 연주와 함께 청아한 목소리로 판소리 '심청'의 '범피중류'를 부른 소리꾼 김수인, 그와 함께 미국 작곡가 이언 스콧의 '강물'을 부른 바리톤 이승민도 최고의 악기인 성대로 무더위에 지친 시민들을 응원했다.
공연 마지막 모든 출연자가 무대 위로 올라와 합창단과 함께 꾸민 '볼라레' 무대는 국립합창단의 예고대로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공연'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박혜상과 손지훈의 이중창은 물론이고, 그들에 못지않은 앙상블을 이뤄낸 김수인과 이승민의 노래 실력도 기대 이상이었다.
거기에 국립합창단의 원숙한 합창과 클래시그널 심포니 앙상블의 연주까지 곁들여지면서 완벽한 무대가 완성됐다.
축제가 끝난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한 국립합창단 직원들에게 공을 돌린 민인기 단장의 진심이 담긴 격려까지 모든 것이 기억에 두고두고 남을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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