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인 사업가 지익주(당시 53세) 씨를 납치 살해한 주범인 필리핀 전직 경찰 간부가 8년 만에 유죄가 인정돼 종신형이 선고됐으나 도주했다.
9일 동포 사회 등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필리핀 경찰은 올해 7월 중순 주범 라파엘 둠라오에 대한 형 집행을 위해 주거지 등을 수색했으나 현재까지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월 26일 필리핀 마닐라 항소법원은 전직 경찰청 마약단속국 팀장인 둠라오에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종신형(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항소심 판사는 이례적으로 1심 판사의 '중대한 재량권 남용'을 인정하면서 판결을 뒤집었다. 중대한 재량권 남용은 여러 법적 증거 및 정황에도 불구하고 1심 판사가 잘못된 판결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결국 주범인 둠라오가 당국의 체포를 피해 행방을 감추면서 유족을 비롯한 교민 사회에서는 한국대사관 등 외교 당국이 도주 가능성에 대비해 선제적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둠라오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주도한 '마약과의 전쟁' 당시 경찰청 마약단속국 팀장을 지낸 조직 내 실세로 퇴임 후에는 변호사로 활동해 왔다.
따라서 항소심에서 유죄가 인정될 경우 그가 지닌 역량과 인맥 등을 감안할 때 도주할 공산이 크다고 해당 사건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예상해 왔다.
하지만 필리핀 사법당국과 한국대사관의 이렇다 할 조치가 없었기 때문에 선고부터 집행까지 약 2주가 지나는 동안 한인 살해범에게 법망을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준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직 경찰관들이 자행한 지 씨 살해 사건은 잔혹한 범행 수법 때문에 교민 사회뿐 아니라 필리핀 전역을 충격에 빠트렸었다.
지 씨는 2016년 10월18일 앙헬레스시 자택에서 납치된 뒤 경찰청 마약단속국 주차장으로 끌려가 살해당했다. 수사 결과 이들은 다음 날 화장장에서 지 씨의 시신을 소각한 뒤 유해를 화장실에 유기했다.
필리핀 검찰은 수사를 통해 이듬해 둠라오 등 5명을 재판에 넘겼고, 1심 결과가 나오는 데만 약 6년이 걸렸다.
사건은 피고인들이 항소해 대법원으로 넘어갔지만, 항소심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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