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왕국'의 몰락 인텔 추락 어디까지?

비전문가 CEO 선임 시대 변화 못 따라가
후발주자 퀄컴 인수의사 타진, 추락한 위상
차세대 미세공정 성공 여부가 관건
구연주 기자 2024-09-24 11:05:47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인텔 캠퍼스 전경


세계 반도체 시장을 이끌었던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의 추락이 계속되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를 분사하는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인수합병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

◆ 반도체 왕국의 몰락

인텔은 1970년대 후반부터 50년 가까이 PC와 서버에 들어가는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장악하며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윈텔(윈도+인텔)동맹'을 맺고 '인텔 인사이드'를 슬로건으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지배했다.

그러나 PC 시장에 안주하면서 아이폰이 등장한 2000년대 중반 이후에도 스마트폰 등 모바일 중심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균열이 시작됐다. PC 수요가 감소하면서 매출은 줄어들었고 강점을 보이던 서버용 CPU에서조차 경쟁업체인 AMD에 밀릴 처지에 놓였다. 인텔의 데이터센터 부문 올해 예상 매출액은 126억달러로 AMD(129억달러)에 추월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중심의 산업 재편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엔비디아가 장악하고 있는 AI 칩 시장에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있다.

2017년 챗GPT 개발사 오픈AI 지분을 확보할 기회를 걷어찬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텔은 생성형 AI가 출시돼도 오픈AI에 대한 투자금을 환수할 수 없다고 판단해 최종적으로 투자하지 않기로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팻 갤싱어 인텔 CEO / 연합뉴스 제공


특히, 기술 전문가가 아닌 마케팅·재무에 특화된 최고경영자(CEO)들이 인텔을 이끌면서 위기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무어의 법칙'으로 알려진 고든 무어를 시작으로 앤디 그로브, 크레이그 배럿 등 반도체 엔지니어 출신의 CEO들은 기술 혁신을 이끌며 전성기를 주도했다.

하지만 2005년부터 마케팅 전문가와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들이 CEO 자리를 꿰차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오픈AI에 투자할 기회를 놓친 것도 CFO 출신의 보브 스완이었다.

이후 2021년 기술 전문가인 팻 겔싱어가 구원투수로 나섰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재진출을 선언했다. 미 정부로부터 이른바 '인텔 지원법'이라고 하는 '반도체 법'을 만들어 수십억 달러의 지원을 받게 됐다.


다만 10년 이상 손 놓고 있었던 기술 혁신을 따라잡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PC 수요 등으로 가속하는 경쟁 속에 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계속해서 감소했고, 시장 전망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급기야 지난 2분기에는 매출과 주당 순이익이 모두 월가 전망치를 밑돌고, 3분기 예상치도 시장 전망치를 크게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가는 상장 이후 최대 폭인 하루 26% 떨어지기도 했다.

현재 인텔 주가는 20달러대로 최고점이었던 2020년 초 대비 약 70% 떨어진 상태다.

퀄컴 CI / 연합뉴스


◆ 후발주자 '퀄컴'의 인수 타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칩 경쟁자인 퀄컴이 인텔 인수를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기업 간 인수합병은 흔하게 있는 일이지만,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기업이 업계 후발주자의 인수 대상이 됐다는 이유로 관심을 끌었다.

퀄컴과 인텔은 PC 및 노트북 칩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으며, 인텔이 칩을 자체 생산하는 것과 달리 퀄컴은 파운드리 업체 대만 TSMC와 삼성전자에 맡기고 있다. 퀄컴은 애플의 중요한 공급업체 중 하나로 스마트폰용 칩을 공급한다. 이날 현재 시가총액은 1천880억 달러로, 933억 달러인 인텔의 두 배에 달한다.

다만, 반독점 심사 등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퀄컴과 인텔 간 거래가 실제 성사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CNBC 방송은 퀄컴과 인텔의 잠재적인 거래는 반독점 및 국가 보안 문제로 복잡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두 기업 모두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으며 한때 중국 기업 인수를 시도하다 무산된 바 있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퀄컴의 최근 인수 타진은 인텔의 56년 역사에서 거의 전례가 없는 취약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인텔의 위기는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지 못한 전략적 실패에서 나왔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모바일 반도체에 이어 인공지능(AI) 칩 시장에서도 뒤처지면서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것.

CFRA 리서치의 안젤로 지노 분석가는 "지난 2~3년간 AI로의 전환은 인텔에 큰 타격을 입혔다"며 "인텔은 적절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팻 갤싱어 인텔 CEO / 연합뉴스


◆ 인텔 반등 가능할까?

인텔은 100억 달러 비용 절감을 위한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추진 중이다. 전체 직원의 15%를 감원하기로 했다. 또 2024 회계연도 4분기에는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고 연간 자본 지출도 20% 이상 줄이기로 한 바 있다.

겔싱어 CEO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파운드리 사업 부문을 독립 자회사로 만들어 외부 자금을 조달하기로 하는 등 반도체 왕국 재건에 힘쓰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텔의 앞날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생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차세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8나노(18A) 공정이다.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내년에 각각 2나노 공정에 들어가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대만 TSMC나 삼성전자보다 일찍 1나노대에 진입할 수 있다.

번스타인 리서치의 분석가인 스테이시 라스곤은 "인텔의 미래는 내년 생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차세대 칩 제조 기술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며 "기술 리더십을 회복하면 수익률을 개선하고 고객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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