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만이 답?" 사고·잡음 끊이지 않는 탈시설 현주소…패러다임 전환점 왔나

"자유로운 생활" 탈시설, 긍정적 측면 뚜렷한 반면 한계도
시설 퇴소 후 사후관리 대책 마련해야…최중증장애인 대상 거주시설 필요
구연주 기자 2024-08-22 11:23:58
지난 20일 찾은 대구 동구 소재 정착형 자립생활주택. 이곳에서 거주하는 박효준(가명)씨와 이진형(가명)씨가 나란히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다. 김유진 기자


지난 2021년 '장애인 거주시설 축소'를 전제로 추진된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무리한 탈시설로 시도로 인한 사건사고 등이 불거지며 탈시설이 되려 인권침해를 일으킨다는 지적이다. 장애인마다 장애 정도와 상황이 다른 만큼 무조건적인 탈시설보다 '거주 선택권'을 늘리는 방향의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 "자유로워서 좋아요"…자립지원주택 직접 가보니

'장애인 탈시설'은 장애인이 폐쇄된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뜻한다. 일부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장애인에 대한 학대·차별이 발생했던 배경에 따라 추진됐다. 실제 장애인거주시설에서 퇴소 후 자립지원주택에서 거주하는 장애인들은 일상생활의 질이 높아졌다며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20일 오전 찾은 대구 동구 신서동의 한 장애인 정착형 자립지원주택. 사회복지법인 한사랑이 운영기관인 곳으로 중증 발달 장애인 이진형(가명·64) 씨와 박효준(가명·31)씨가 거주하고 있다. 이씨는 1개월 이내의 체험형 자립생활주택 생활을 거쳐 지난 2021년 4월 시설 퇴소를 확정지었다. 박씨는 지난해 4월부터 자립지원주택에서 생활 중이다.

이들은 지체장애가 없어 이동에 불편함이 없고 기본적인 의사소통 또한 가능한 상황이다. 실제 이씨의 일상생활을 지원해주는 활동지원사는 평일 하루 3시간만 근무한다. 집 근처 산책, 대중교통 이용, 물건 구매까지 스스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활동지원서비스를 아예 이용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1~2회씩 가사간병서비스만 이용하고 있다.

직장 생활도 병행하고 있다. 이씨는 장애인복지일자리 사업 일환으로 사회적협동조합에서 하루 3시간씩, 박씨는 한사랑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에서 하루 3시간씩 일한다. 근무 시간 외에는 각자 TV 시청, 산책 등 여가 생활을 누린다. 박씨의 경우 한사랑센터사업에서 운영 중인 '반찬 만들기', '건강필라테스' 등 탈시설자립지원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 중이다. 자립생활의 장점을 묻는 질문에 이들 모두 "시설보다 자유로워서 좋다"고 입모아 말했다.

◆한계점도 존재…인프라 구축 필요해

모범적인 탈시설만 있는 건 아니다. 대구시가 2022년 발표한 '장애인 탈시설 욕구조사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시설을 퇴소한 다수 장애인들은 사기, 정착금 압류 등의 사고를 겪는다. 탈시설의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되고 시설 밖에서 발생하는 각종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한 대책은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한 시설종사자는 "시설에서 퇴소한 발달장애인이 사기를 당해 정착지원금 천만원을 모두 압류된 상황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자립해서 나갔다가 일상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시설 재입소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서울시 퇴소장애인 자립실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6명이 시설 퇴소 후 3년 안에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설 거주 장애인 전원이 중증 장애인이었고, 대다수가 지적 장애, 자폐성 장애 등 발달장애를 갖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은 명확한 대안 없이 탈시설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발생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와 현장 종사자들은 장애인들의 장애 정도가 다른 만큼 보다 세세한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나호열 전 대구발달장애인지원센터장은 "탈시설 정책과 관련 발달 장애인의 개개인의 특징을 배려한 정책과 인프라가 미비한 실정"이라며 "시설 퇴소 후 장애인들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사후관리 지원체계가 강화돼야하고 장애인 거주시설 또한 시설 개선을 통해 시설 이용이 필요한 최중증 장애인들도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현 사회복지법인 한사랑 장애인자립생활주택 담당 복지사는 "자립지원 과정은 장애인 당사자에게는 삶에서의 큰 전환점이지만 진정 당사자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며 "본격적인 자립생활주택 입주 전 장애인들이 단기체험을 통해 자립생활을 직접 체험해보는 기회의 확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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